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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주(浪州)는 부안의 별호가 아니다[2]
[김형주의 부안이야기-부안 땅이름-7] 부안의 별호는 '부풍'
| 2007·09·18 01:26 |

보안면 우동리고인돌/자료사진ⓒ부안21


필자는 앞에서 보안현(保安縣)을 지칭하는 낭주(浪州)라는 땅이름은 보안지역만을 지칭하는 땅이름임으로 그것을 부안읍 지역을 상징하는 땅이름으로 사용함은 역사·문화를 잘못 알고 사용하는 짓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는 땅이름이 곳(장소)을 한정하여 지칭하는 언어기호(言語記號)이며 만일 낭주를 부안의 별호로 사용하여 고착화 되어버린다면 부풍(扶風)이라는 부안의 원 별칭 이름은 또 어찌할 것이고 모든 기록문화의 혼란은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땅이름은 고유명사(固有名詞)로 분류 표기되고 있다. 사람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듯이 땅에도 곳마다 그곳의 특성을 나타내는 고유한 이름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땅이름은 그 땅의 지형(地形)이나 지물(地物)을 구분할 필요성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에 지구상에 오직 한 곳 지점만을 지칭하는 사회계약적 특수한 언어기호 성격의 이름이어서 이것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도 없고 또 빌어다가 사용할 수는 더욱 없는 것이다.

또 땅이름은 조상들이 남겨준 귀중한 역사·문화의 유산이어서 우리들은 땅이름에서 역사를 읽을 수 있고 거기에 담겨져 있는 그곳만의 고유 독특한 문화의 향기도 맡을 수 있으며, 그 지방의 자연적 환경과 지형 지물의 형태는 말할 것도 없고 생활, 풍습, 종교, 음운(音韻)의 변천체계까지도 추출해 낼 수 있는 무형의 문화재다. 그러기에 땅이름을 일러 역사·문화의 화석(歷史·文化의 化石)이라고 하며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하여, 또는 안 든다고 하여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음은 물론이요 임의로 이쪽 저쪽 딴 곳으로 옮겨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더욱 아니다.

낭주(浪州)라는 땅이름이 옛 보안현의 별호인 고유명사인 것이 확실한 이상 그 지역을 지칭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이지 어떻게 부안읍에서 빌어다가 쓸 수도 있다는 말인가. 부안의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어느 인사는 말하기를 옛 보안지방이 이제는 부안 땅이 되었으니 낭주를 부안으로 원용한다 하여 무엇이 잘못이냐고 강변하고 있다. 이 같은 생각은 마치 고부(古阜)의 별호가 영주(瀛洲)이므로 오늘날 정읍에서 정읍을 상징하는 별호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이론이요, 무장(茂長)이 이제는 고창 땅이므로 그 별호인 무송(茂松)을 고창의 별호로 써도 된다는 말과 같은 주장이어서 한심하기까지 하다.

고려 때의 큰 문장가 문순공(文順公) 이규보(李奎報)는 전주의 사록(司錄)으로 와 있으면서 변산의 벌목(伐木) 책임자로 변산을 자주 드나들었다. 태인(泰仁), 고부(古阜)를 거쳐 줄포, 보안, 진서 등 검모포(黔毛浦: 지금의 줄포만) 연안의 바닷가를 여러 차례 지나다니면서 바닷가 큰 물결에 위경도 겪었고 밀물에 쫓기어 옷도 적시었으며,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에 시적(詩的) 감흥을 노래로 읊기도 하였는데 이 지역의 역사의 뿌리 깊음과 생활습속(生活習俗)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습속(習俗)은 단족(蛋族)과 같음이 많고 고을 뿌리 깊음은 잠총국(蚕叢國) 같음을 누가 알랴.(習俗例多如蛋子 縣封誰信自蚕叢)」
  
보안현 지방 사람들의 습속이 옛날 중국 남방 바닷가에서 선상생활(船上生活)하는 해안 민족과 비슷한 점이 많고 고을의 역사가 깊음은 옛 중국 서촉(西蜀)지방에 있었던 잠총국(蚕叢國)과 같다고 노래하여 이 지역이 물결 출렁이는 고을(즉, 낭주(浪州))임을 시(詩)로 노래하였다. 낭주라는 고을 이름은 이와 같은 지역 특성의 배경에서 생성된 특정지역의 땅이름인 것이다. 어떻게 빌려다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고을을 상징하는 별호를 연구와 고증을 소홀히 하여 함부로 사용하였다가 한바탕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부끄러운 사례가 1970년대 전주에서 있었다. 전주 어느 대학에서 교지(校誌)의 이름을 《비사벌(比斯伐)》로 하고 수년간 간행하여 오다가 뒤늦게 착각임이 밝혀져 중단한 일이 그것이다. 비사벌(比斯伐·比自火)은 전주(全州)·완산(完山)의 고호(古號)가 아니고 경상남도 창령(昌寧)의 신라시대 고호(古號)인 것이다. 창령에 가보면 비사벌사회문화연구소, 비사벌신문사 등 별호 명칭의 기관단체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면 이 대학에서는 왜 전주를 비사벌로 잘못 알고 교지 이름을 비사벌(比斯伐)이라 한 것인가. 이는 일부 사서(史書) 등의 기록에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다.《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의 지리지(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전주 건치연혁(建置沿革)을 보면 「전주: 본백제완산 일운비사벌 일운비자화(全州: 本百濟完山 一云比斯伐, 一云比自火)」라 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여 「전주 비사벌」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전주 비사벌」소동은 거의 사라졌다.

《삼국사기(三國史記)》 34권의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화왕군(지금의 창령군): 본비자화군 일운비사벌 진흥왕16년치주명하주 26년주폐 경덕왕개명금창령(火王郡: 本比自火郡 一云比斯伐 眞興王十六年置州名下州 二十六年廢州 景德王改名今昌寧)」이라 하여 전주·완주를 비사벌로 본 것이 잘못임이 명백하여지면서 역사 지리학계는 물론이요, 지식인 언론계의 여론이 높아지자 즉각 시정되었다. 사실 전주 비사벌설은 땅이름의 음운체계적(音韻體系的)인 입장에서 보아도 무리한 일이였다. 신라계통의 땅이름 음운은 그 끝말이 벌(伐)로 끝나고 백제의 땅이름은 부리(夫里)로 끝난다. 서라벌(徐羅伐: 경주), 달구벌(達丘伐: 대구), 사벌(沙伐: 상주), 비사벌(比斯伐: 창령) 등은 신라계 음운의 땅이름이요, 고사부리(古沙夫里: 고부), 모량부리(毛良夫里: 고창), 미동부리(未冬夫里: 남평), 파부리(波夫里: 도화) 등은 백제계 음운의 땅이름인데 전주는 백제 본고장 중심 땅이었는데 ‘벌’이 붙는 땅이름은 맞지 않는 음운체계였다 할 것이다.

전주에서의 비사벌 소동은 한바탕의 창피한 웃음거리로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난 것은 아니다. 잠시 파괴되었던 문화적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전주의 거리에서 가끔씩 볼 수 있다. 지금은 고쳐졌지만 비사벌예술고등학교가 있었는가 하면, 비사벌아파트도 있고 비사벌다방, 비사벌학원, 비사벌미용실에 이르기까지 크게 오염되어 이곳이 경상남도 창령시(昌寧市)인지 전라북도 전주인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여 주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교지 명칭에서 비롯된 신중치 못한 땅이름 잘못 사용으로 하여 땅이름 문화가 이렇게까지 상처를 입은 것이다. 지금도 부안의 일부 얼치기 문화인들 중에는 부안의 별호 부풍(扶風)이 엄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좋다하여 낭주(浪州)를 끌어다가 사용하려 함을 볼 때마다 지난날 전주의 비사벌(比斯伐) 소동이 자꾸만 떠오르곤 한다. 내 어머니 이름을 제쳐두고 남의 어머니 이름을 빌어다가 내 어머니 이름으로 사용하면 되겠는가 묻고 싶다.  

/김형주

김형주선생님은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속신어와 실아 온 민초들의 이야기'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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