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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철기시대 유적


● 반곡리 유적

-소재지 : 부안군 동진면 반곡리
-시 대 : 초기철기시대

부안읍에서 문포쪽으로 4km 지점 도로변에 있는 해발 30m의 소쿠리 모양을 한 산이 있다. 유적은 산 구릉에 설치된 목책지로 북쪽부분은 모두 파괴되었고, 유적지 윗면은 경작되고 있다. 이 경작지 각란층에서 김해 토기편을 주로하여 민무늬토기와 신라식 토기가 수습되었다. 김해식 토기에는 주로 회색토기가 있으며, 그중에는 볍씨자국이 있는 환상파수편(環狀破手片)도 있다. 이 유적은 수습되는 토기편들로 보아 초기철기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유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토기에 볍씨자국이 있는 것이 있어 벼농사에 관한 증거로 추정 할 수 있어 더욱 중요한 유적이라 하겠다.
  
-참고문헌·전라북도 문화재지(윤덕향)-  


● 사산리 유적

-소재지 : 주산면 사산리
-시 대 : 초기철기시대

주산면 소산리 유적에서 북쪽으로 2km 지점에 있는 유적으로 해발 100m의 산 정상에 있는 성책지이다. 타원형을 이루는 성책의 주변, 특히 동북부지역의 책(柵) 내외에 적지않은 토기편이 흩어져 있다. 토기편에는 소산리식의 민무늬토기도 있고, 김해식토기, 신라식토기도 있다. 김해식토기는 연질적갈색, 연질·경질 회색토기가 출토되며, 격자문, 승석문, 어깨부분에 톱니무늬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며, 옹관토기로 추정되는 것도 있다. 성책이 있는 이 유적은 따라서 특이한 양상을 보이는 성책일뿐만아니라 원삼국시대의 옹관유적으로 중요하다.

-참고문헌·전라북도 문화재지(윤덕향)-  

·책(柵)-쇠나 나무말뚝으로 둘러 막은 우리
·격자문-바둑판처럼 가로 세로 줄이 진 무늬
·승석문-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처럼 생긴 무늬



● 용화동 유적

-소재지 :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 용화동
-시 대 : 초기철기시대

구지리 유적의 북쪽 500m 내외지점에 있으며, 창북리 유적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 언덕에 있다. 해발 20m 내외의 높이지만 주변지형이 평지인 탓으로 10m 내외의 높이를 보이는 낮은 대지를 형성하고 있는 성책지 유적이다. 유적의 전면이 개간되었으며, 이 지표각란층에서 김해토기를 주로하여 돌도끼, 삼각형 돌칼과 민무늬토기, 신라식 토기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김해식 토기에는 사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어깨부분에 거치문(鋸齒文)이 있는 옹형토기(甕形土器)도 있으며, 두께가 2mm인 난곡형(卵穀形) 토기도 있다. 이 유적도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원삼국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데 계화도간척사업으로 인하여 모두 소실되었다.

-참고문헌·전라북도 문화재지(윤덕향)-  


● 창북리 유적

-소재지 :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시 대 : 초기철기시대

부안읍에서 계화도 가는 길 6km 지점, 창북리 북쪽에 있는 해발 30m 내외의 산 언덕에 있는 성책지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 곳을 수문산이라고도 부르며, 성책지의 동남쪽에 있는 금산리에는 성책지와의 사이에 조개무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 금산리의 조개무지에서도 김해토기가 출토되고 있어 초기철기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유적으로 보인다. 한편 성책지에서는 각종 석기와 더불어 민무늬토기, 김해식 토기, 신라식 토기가 수습된다. 김해식 토기는 연질 적갈색, 연질·경질 회색토기가 모두 발견되며, 어깨부분에 톱니무늬가 있는 사산리식 옹기조각도 있다. 이 창북리 유적과 그 동남쪽에 있는 금산리 조개무지 유적은 초기철기시대를 전후한 유적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전라북도 문화재지(윤덕향)-  
   

● 당하리 유적

-소재지 : 부안군 동진면 당하리
-시 대 : 초기철기시대

1975년에 발견되었고, 1981년 9월에 2개체분의 옹관묘가 수습 조사된 이 유적은 부안읍에서 서북쪽으로 구지산유적지 못미쳐 당하리마을에서 남쪽으로 100여m에 있는 해발 15m 내외의 낮은 산 언덕에 있다. 유적은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도로와 접하고 있다. 2기의 옹관묘 중 1기는 구경 29.4cm, 최대복경 49.5cm, 높이 52cm의 토기는 아가리가 서쪽에 오도록 눕혀 놓고, 아가리 부분을 다른 토기편으로 막은 것으로 보이나 분명하지는 않다. 이 옹관토기를 놓기 위하여 동서 길이 75cm 내외, 남북 폭44cm의 말각방형(抹角方形) 토광을 판 것이 확인되었다. 토기는 구(球)에 가까운 계란형의 동체를 가진 외반구연(外反口緣)의 토기로 연질 회색을 보이며 전면에 격자문이 있는 김해식 토기이다. 다른 1기는 위에서 말한 옹관에서 50여m 남쪽 비스듬한 곳에서 조사된 것으로 동서로 길게 누워있는 2개 옹기아가리를 서로 맞대어 놓았다. 이 옹관을 놓기 위한 토광은 동서 97cm, 남북 47cm 내외가 확인되었다. 옹관토기는 동쪽에 있는 것이 구경22.5cm, 최대복경 41.8cm, 높이 42.5cm이고, 적갈색 연질토기로 몸통 전면에 격자문이 있다. 서쪽에 있는 것은 적갈색 연질토기로 몸통 전면에 격자문이 타날(打捺)되었고, 구경27.6cm, 최대복경 37.2cm, 높이 51cm이다. 이 옹관은 따라서 전체길이가 93.5cm 내외에 이르는 것으로 보이며 김해식 토기가 사용된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이 옹관토기외에도 삼각형 돌칼, 돌촉 등과 민무늬토기, 삼국토기도 수습되며, 다수의 김해식 토기가 흩어져 있어 초기철기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유적임이 분명하다.

-참고문헌·전라북도 문화재지(윤덕향)-  



구지리 유적
볍씨자국토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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