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이 보여요!
 
인터넷신문 www.buan21.com//기사제보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새책소개] 박형진의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변산반도 바닷가 생긴대로 꾸불텅꾸불텅 난 길을 짚어 모항에 닿으면, 거기가 지은이가 태어나 자라고 여지껏 살고 있는 띠목마을이다. 전어 회 뜨는 칼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이 남자 박형진은 시인이다. 농사꾼이다. 또 어린이집 운전수다.

두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산문집을 낸 박형진 시인이, 변산바다의 풍경을 담아 맛깔나고 찰지게 써내려간 책이다. 1996년 출간된 <호박국에 밥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헤던>의 10년 만에 새롭게 펴냈다. 한 집의 아들이 군대에서 보낸 편지를 온 동네가 돌려 보던 시절, 아궁이 불에 굽고 끓여낸 음식 이야기, 대처에 돈 벌러 나간 어린 자식들 돌아오는 명절의 풍경이 때론 익살맞게 때론 구슬프게 그려진다.

철따라 해 먹었다는 음식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여 꼴까닥 침 삼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시뿌장스러운'(마음에 차지 않아서 시들한), '알음짱하고'(눈치로 넌지시 알려 주고), '달롱개'달래), '나숭개'(냉이), '그중스러우니'(아주 걱정스러우니) 같은 전라북도 변산 갯가 마을의 쫄깃한 사투리가 쏟아진다. 페이지마다 해설을 따로 달아 놓아 사투리맛을 새기는 재미를 더해 준다.

펴낸 일/2005.10.24
펴낸 곳/소나무
값/8,800원

부엌 애기부터 하자. 이집은 요사이 보기 드문 재래 부엌을 집 앞에 달아메었다. 처음 이 집을 찾았을 때, 잘 다져진 흙바닥이 어찌나 정갈하도고 살갑던지 방을 마다하고 불길이 잦아들고 있는 아궁이 앞에 주저앉았다가, 그 길로 주인이 도마에 썰어 주는 전어, 뱃기름 바짝 오른 꼬소한 전어 집어 먹는 데 홀려 소주를 넙죽넙죽 받는 바람에 취하기부터 했다.

   변산반도 바닷가 생긴대로 꾸불텅꾸불텅 난 길을 짚어 모항에 닿으면, 거기가 박형진이 태어나 자라고 여지껏 살고 있는 띠목마을이다. 전어 회 뜨는 칼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이 남자 박형진은 시인이다. 농사꾼이다. 또 어린이집 운전수다.

가방끈 짧은 시인

   두 권의 시집과 두 권의 산문집을 낸 시인 박형진의 최종학력은 ‘초등졸’이다. 가난한 살림살이 탓도 있겠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모조리 읽어버린 「한국문학전집」100권이 학교 공부 재미를 시들하게 한 때문이다.

   박형진의 글이 비지찌개 푹푹 떠 넣어 착착 디쳐 먹는 보리밥 같이 허물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박형진은 어디서 배운 적 없는 글을 맛깔나고 찰지게 삶으로 써내려 온 것이다. 박형진 글의 스승이라고 한다면 사랑방에 모여 나물을 다듬으며 속닥거리던 어머니와 생초각시, 갈비이모요, 죽은 사람 관 짜 주고 침 잘 놓던 아버지요, 술 먹고 태봉이네 마당서 쌈질하던 동네 사내들이며, 도깨비 잘 나던 ‘숯구덩이 미친년 잔등’일 것이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산다는 건

   학교를 그만 둔 뒤부터 지금까지 박형진의 직업은 농부였다. 땅 한 마지기 없어 놉만 하러 다녀야 하는, 천 원짜리 한 장 없이 겨울을 용케 나는 막막하고 고단한 때도 있었다. 지금은 적은 땅일망정 제 논밭을 일구고는 있지만 수확을 하고도 그저 쌓아 두어야 하는 현실은 오히려 팍팍하다.

   그렇다고 다른 일은 생각도 않는다. 태어나 자란 이 곳과 ‘질긴 게’ 있어서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닥상이다!”  기분이 좋으면 ‘닥상이다!’에서 무릎을 치며 술 한 잔 더 가져 오라시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한, 이 곳은 ‘고향’이기 때문이다.

애기들 태우고 달리는 아침

   아침마다 박형진이 꼭 하는 일이 있으니, 봉고차를 몰고 고샅길 요리 돌고 저리 돌아 집집마다 잠 덜 깬 애기들 하나씩 태워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일이다. 어린이집 선생인 아내가 애기들을 안아 태우면 요즘 보기 드물게 땟국물이 흐르는 이 녀석들은 ‘위험하다 앉아라’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뛰고 구르고 법석이다.

   변산공동체 윤구병 선생과 ‘마포어린이집’을 열고 꾸려 오며 박형진은 줄곧 운전수는 맡아 놓고 있다. 그 자신, 푸짐이, 꽃님이, 아루 세 딸년을 태우고 다니며 길렀고, 막둥이 보리 녀석은 지금 이 차를 타고 가는 참이다. 아이들 울음소리 끊어지면 그것이 농촌 망하는 징조인 줄 아는 박형진은 그 금덩이 같은 애기들을 태우고 변산 바닷가를 날마다 달리고 또 달린다.

이제사 사는 맛을 알겠다

   지난 스무 해 남짓 해마다 그랬듯이 올 겨울에도 박형진은 ‘풍물강습’에 나설 것이다. 지역 풍물패 상회를 맡아 밭 갈고 글 쓰는 틈틈이 지역의 큰 행사에서 풍물을 치고, 마을마다 굿패를 만들 수 있게 풍물 강습을 계속 하는 것은 세시명절에 마을에 굿소리 끊이지 않게 하자는 마음에서다.

   노동과 음식과 놀이가 제각각으로 미쳐서 돌아가는 세상을 거슬러 흙바닥에 아궁이 고집하며 불때서 밥하고, 방 덥시고, 아궁이 불에 굽고 끓이면서 음식하는 마음도 그것과 한가지다.

   그런 그가 나이 쉰을 앞두고 ‘이제사 알콩달콩 사람 사는 맛을 알겠다’고 하니 그 맛이 어떤 것인가 한번 들여다보자






박형진은 변산 모항에서 농사지으며 시를 쓴다..ⓒ부안21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의 세 가지 맛

군침이 꼴까닥! 넘어가는 음식맛, 글맛

   나는 부엌에서 “니미럴! 나도 한 잔 주면서 처먹어라” 욕을 하면 나한테도 크라스 소주잔이 막 돌아온다. 요리도 술 한 잔 들어가서 기가 승해야 잘 되는 것이다.
   대가리는 미리 삶아서 푹 익혀야 맛이나고 발은 살짝 삶아야 연하다. 조미료는 빼 버리고 고춧가루, 쪽파 굵직하게 썬것, 마늘, 설탕, 간은 소금 간이라야 맛이 있는데 왜간장을 약간 쳐도 무난하다. 그러나 왜간장으로 간을 해서는 안 된다. 초를 좀 많이 넣고 큰 양푼에 양념을 버무린 다음 여기에 삶은 쭈꾸미를 넣고 뒤적거려야 한다.
   쭈꾸미 회는 뜨겁고 맵고 신 맛이 강해야 제 맛이 난다. 매운 맛이나 신 맛은 음식이 뜨거워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친 것은 벌써 몇 점 집지 않아서 이마에 땀이 맺힌다. 알이 가득 찬 대가리는 입 안에 넣고 뜨거워서 씹지를 못하고 얼굴들이 벌겋다. (「변산바다 쭈꾸미통신」 본문 140쪽)


   글이 맛있다는 것이 이런 것일랑가. 박형진이 늘어놓는 철따라 해먹었던 음식 이야기는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여 꼴까닥 침 삼키지 않을 재간이 없다. 칠남매의 막둥이로 어머니 치마꼬리 잡고 다니며 음식 만드는 구경을 많이 했다지만 그 자신이 음식 만들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쓰지 못할 글이지 않겠는가.

씹을수록 쫄깃한 전라도 사투리맛

   ‘시뿌장스러운’(마음에 차지 않아서 시들한), ‘알음짱하고’(눈치로 넌지시 알려 주고), ‘약꼽재기’(속이 좁고 약아빠진 사람), ‘달롱개’(달래), ‘나숭개’(냉이), ‘그중스러우니’(아주 걱정스러우니), ‘굴풋한’(배가 고픈 듯한), ‘뒷서두리하는’(뒤에서 서둘러 일 도와 주는) 같은 전라북도 하고도 변산 갯가 마을의 쫄깃한 사투리가 쏟아진다.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을 후루룩 넘겨보면 문장마다 쏟아지는 사투리 해설을 따로 달아 놓아서 사투리맛을 새기는 재미를 더해 준다.

고향 풍경이 빚어내는 달디단 추억의 맛

   고향. 바다와 갯가에 끄러매 놓은 꽁댕잇배, 당산 나무와 바다를 향해 엎드린 야트막한 초가집, 내 키보다 더 큰 농어를 질질 끌고 오시던 아버지, 빨간 크레용을 입술에 찍어 바르던 이웃집 누님, 아이스 케키 장수 넘어오던 몬당(언덕), 큰 눈 지고 그치면 나서던 토끼몰이 …. 한 집의 아들이 군대에서 보낸 편지를 온 동네가 돌려 보던 시절, 대처에 돈 벌러 나간 어린 자식들 올아오는 명절이면 고향집 불빛보다 먼저 풍물소리 달려와 가슴 어루만지던 시절의 고향 풍경이 때론 익살맞게, 때론 구슬프게 그려져 웃다가 울다가 하게 만드는 것이다.

박형진
1958년 전북 부안군 변산면에서 일곱 형제의 막둥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들어서는 100권짜리 '한국문학전집'을 독파하는 바람에 학교 공부 재미가 시들해져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젊은날 한동안은 서울서 고물장수를 해가며 시국 강연장에 부지런히 드나들다가 '농사꾼은 농촌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유치원 선생 아내를 만나 푸짐이, 꽃님이, 아루, 보리 네 아이를 두고,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글을 써왔다.

1992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봄편지'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바구니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다시 들판에 서서>가 있고, 산문집으로 <호박국에 밥 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헤던>,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가 있다.


/부안21/buan21@buan21.com
  
5 부안21 책 소개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06·04·07 4827
[알라딘 서평] 책소개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장산곶매' 등으로 잘 알려진 행동주의 화가 최병수 씨의 이야기를 담은 책. '국졸' 출신의 노...
부안21 책 소개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05·10·30 5922
[새책소개] 박형진의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변산반도 바닷가 생긴대로 꾸불텅꾸불텅 난 길을 짚어 모항에 닿으면, 거기가 지은이가 태어나 자라고 여지껏...
3 부안21 책 소개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 05·07·23 7913
코뮌놀이로 본 부안항쟁 저자 : 고길섶   출판사 : 앨피   발행일 : 2005.07.15    349 ...
2 부안21 책 소개  새만금 새만금 - 갯벌이 사람을 살린다 05·03·18 5251
무지와 무관심을 강요하는 자본의 파괴 - 허정균, 「새만금 새만금 - 갯벌이 사람을 살린다」, 그물코, 2003 원재광 흔히 환경문제를 두고 벌어...
1 부안21 책 소개  새만금, 갯벌에 기댄 삶 05·03·18 5944
새만금 '갯벌에 기댄 삶' 글/사진 허철희(창조문화) 허철희 작가의 갯벌에 기댄 삶『새만금』이 나왔습니다 이용범(시인) 칠팔 년 전 직원...
1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