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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의 용화할머니
지운 선생님의 딸, 용화 할머니
1999.04.24. 지운김철수출판기념회장에서  


돈지의 용화할머니


계화면 돈지에는 소녀 적에 명곡과 시를 좋아한 용화 할머니가 산다. 할머니가 사는 집은 70년대 식 시멘트 새마을 간판에 '삼성약방'이라고 쓰였고 퇴색하여 회색 빛이 완연하다. 약방에 들어갈라치면 문을 밀어야할지 잡아 다녀야할지 항상 고민한다. 그러나 밀든 잡아 다니든 열기가 만만치 않다. 약장에는 흔한 약들이 듬성듬성 들어 있고 작은방 두개, 뒤뜰에 아버지 김철수 선생이 만든 꽃밭에 나무들이 관리를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는 외로움 속에서도 찾는 손님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배려한다. 기억력이 좋아서 지난 가족사를 쉼 없이 얘기하고 국제 정세까지를 정확하게 말할 때는 고운 얼굴에 홍조를 띤다.

1919년 생이니 집 나이로 84세이다. 61년부터 돈지에 살면서 약방을 경영했다. 돈지라는 마을은 원래는 하서면에 속한 바닷가 어촌이었다. 계화면이 생기면서 계화면에 편입되었고 마을의 뒷산 형국이 돼지 형국이어서 돈지(豚地)라 한다는 말도 있고, 산밑 돌 사이의 우물이 막힘 없이 잘 솟는다하여 돈지(沌池)라고 써온 것이라고도 한다. 한때 이곳은 큰배들이 소금을 싣고 들어오고 사람들의 들고남이 많은 포구였지만 계화도 간척공사로 어촌 기능을 거의 잃어 폐촌이 되었다.
  
용화 할머니는 어려운 세상을 살았다.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의 딸이라는 사실 하나로 감시와 질시를 당하며 살았다. 지운 선생은 백산면 출신으로 조선공산당 3차 비서를 지내고 해방 후에는 박헌영과 노선을 달리하여 사회노동당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한때 정부차원에서 독립유공자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는데 그 뒤 어떤 일인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마도 사상운동이 걸림돌이 된 것 같다. 이미 정부의 「정신문화연구원」에서는 『김철수』라는 책자를 내어 그의 활동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사상운동으로 자리 매김을 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 문제는 용서 할 수 없는 성역으로 남아 있다.

민족을 파는데 앞장서고 동족을 어려움에 빠뜨리는데 역할했던 친일파에 대한 관대함에 비추면 형평성에도 크게 어긋난다. 친일파 자손이 경영하는 회사에 독립군 자녀가 수위를 한다는 냉소적인 얘기가 오르내린지 오래다. 독립운동에 대한 활동은 묻히고 보수주의자들이 미워하고픈 이데올로기만 남아서 일제시대와 해방후의 인물 평가를 어렵게 만든다.

남편은 결혼 당시 서울의 매일신보 기자였는데 사상 운동을 하느라 제대로 결혼 생활도 못한 채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1.4후퇴 때 서빙고 다리 위에서 총살당한 것으로 전해 듣고 있다.

그러나 남편을 잃고 어렵게 사는 할머니에게 무엇인가 얻어내려고 감시기관에서 자주 찾아오니 할머니는 이들에게, "자기들이 총 쏘아 죽이고서 나더러 내 놓으라 한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시절 큰조카가 보안대에 끌려가 취조를 받던 중에 국가관을 말하라고 하자, 조카는 격앙된 어조로 "대한 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자랐수다"라고 말했다며 기개가 대단했다고 웃는다. 그러나 재주가 많은 조카들도 사상문제에 걸려 반듯한 직장 한번 갖지 못하고 지금까지 어려운 생활을 한다.

할머니는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던 피해자지만,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는 역사의 진보를 위해 자양분으로 썩어간 혁명가로 이해하고 있다.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을 때는 지필묵을 감추고 붓글씨를 못쓰게 했다며, 글을 써서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시던 것을 못하게 한 것은 불효였다고 눈물짓는다.

할머니는 지운 선생이 묻힐 때, 선생이 평소에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묵직한 칼을 넣으려했다. “아버지, 저승 가셔서도 좋은 일 많이 하시오. 이승에서 하셨던 것처럼 이 칼로 지팡이도 깎아서 선물하시고 화선지도 많이 잘라서 좋은 글귀도 써 주시고 과일도 깎아 잡수시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허리가 꼽추처럼 구부정하고 아픈데도 하루에 몇 번씩 연탄불을 갈아야하고 움직이면 허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면서도 아픔을 애써 감춘다. 한국전쟁 때 차를 타고 가다가 폭격을 맞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면서 허리를 몹시 다쳤지만 아픈 허리를 돌볼 틈 없이 언니가 남긴 다섯 조카들을 돌보고 키우느라 정신 없이 살았다.

어둡고 추운 겨울밤엔 연탄불 갈기가 더욱 어렵다. 이생의 삶이 오랠 것 같지 않은 할머니에게 연탄불 가는 수고라도 줄일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찾을 수 없다면 친구여, 조국이니, 역사니 하는 말들이 부끄러워 이젠 말할 수 없다네.
/정재철


글쓴이 :   정재철  
작성일 : 2003년 01월 22일 12시 24분 24초    조회 :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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