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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정]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신석정 시비(변산반도 해창공원)
신석정 시인
신석정 시인의 육필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세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이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히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이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 소리도 차츰 멀어져 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세요.
이제야 저 숲 너머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전문  (1939. 시집 <촛불>에 수록)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辛夕汀:1907~1974).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목가시인' 또는 '전원시인'이라는 수사가 붙어다닌다. 이를 절감케 하는 시어들이 그의 모든 작품들에서 어김없이 배어나고 있다. 그의 시들을 대하면 감정을 여과해 낸 절제된 시어 속에서 가슴에 와닿는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아득한 황토빛 들녘, 대숲을 가르는 바람소리, 까만 어둠 속에 가물대는 별, 포근히 풀린 봄하늘, 눈부시게 푸르른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석정의 시를 가리켜 "목신(牧神)이 조으는 듯한 세계를 조금도 과장하지 아니한 소박한 리듬을 가지고 노래한다"라고 평한 이도 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원초적 내면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어들을 찾아 일생을 향토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석정은 간재 전우의 제자로 한학자였던 부친 신기온(辛基溫)의 3남2녀 중 차남으로 부안읍 동중리 '노휴재' 뒤편의 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때부터 그의 집안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안읍에서 한약방을 해오고 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석정(錫正)이었다. 그가 태어난 날이 7월 7일 칠석날이어서 나중에 '석정(夕汀)'이라 스스로 호를 지었다. 보통학교 6학년 때 일본인 선생이 수업료를 안낸 한 학생에게 옷을 벗기는 벌을 주자 전교생을 선동하여 수업거부를 했다는 전력으로 보아 어릴 때부터 불의를 보면 못참는 강직한 면도 있었으나, 그는 어느덧 상소산에 올라 먼 바다를 보며 구르몽과 하이네를 외는 문학 청년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석정은 부친을 따라 행안면 역리 송정마을로 이사하여 살다가 다시 동진면 창북리로 옮겨 거기에서 대부분의 소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1924년 17세의 나이에 '기우는 해'가 조선일보 투고 작품으로 실리게 되어 그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해에 석정은 시인 장만영(張萬榮)의 처제인 만경 사람 박소정(朴小汀)과 결혼했다.

이미 아내를 맞아 집안의 가장이 되었지만 마침내 그는 문학에의 큰 길을 찾아 1930년에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그는 한 친척의 소개로 개운사 대운암(현 고려대학교 뒤 소재)의 중앙불교전문강원(中央佛敎專門講院:동국대학교의 전신) 박한영(朴漢永) 문하에 들어 1년 남짓 불전을 공부하고 노장철학을 배우며, 30여명의 젊은 승려들과 함께 '원선(圓線)'이라는 문학회람지를 만들었다. 또한 이 시기에 그는 정지용, 한용운 등 당대의 이름높은 시인들과도 교분을 나눌 기회를 가졌으며 김영랑, 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도시 생활은 두 해를 넘기지 못한다. 자연에 대한 끈끈한 귀향의식이 작용했던 탓일까, 1931년 '시문학' 3호에 '선물'을 발표한 뒤 홀연히 낙향을 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석정은 부안읍 변두리 선은리에 초가 하나를 사서 '청구원(靑丘園)'이라 이름을 붙이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산, 바다, 들이 어우러진 변산의 한 켠을 지키며 건강하고 싱싱한 시어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임께서 부르시면',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등이 이 시기의 그의 대표작이다.

1939년 그의 전원생활은 33편의 시를 담은 첫 시집 <촛불>로 결실을 맺어 많은 이들에게 '고향'이라는 원초적 본질을 되뇌이게 하였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 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가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세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 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가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전문  (1939. 시집 <촛불> 수록)

그러나 석정의 이런 목가적인 시풍을 일제 말기의 암담한 민족 현실은 허용하지 않았다. 인간 본연의 자연의 모습을 일깨우려 했던 시인의 혼은 그 자연 속에 침잠해 있던 시어들을 들고나와 사뭇 지사적인 풍모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포옹(抱擁)할 꽃 한 송이 없는 세월을
얼룩진 역사(歷史)의 찢긴 자락에 매달려
그대로 소스라쳐 통곡하기에는 머언 먼 가슴 아래 깊은 계단(階段)에
도사린 나의 젊음이 스스러워 멈춰 선다.

좌표(座標) 없는 대잦이 밤보다 어둔 속을
어디서 음악(音樂)같은 가녀린 소리
철그른 가을비가 스쳐가며 흐느끼는 소리
조국(祖國)의 아득한 햇무리를 타고 오는 소리
또는 목마르게 그리운 너의 목소리
그런 메아리 속에 나를 묻어도 보지만

연이어 달려오는 인자한 얼굴들이 있어
너그럽고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두 손 벌려 차가운 가슴을 어루만지다간
핏발선 노한 눈망을로 하여
다시 나를 질책(叱責)함은
아아, 어인 지혜의 빛나심이뇨!

당신의 거룩한 목소리가
내 귓전에 있는 한,
귓전에서 파도처럼 멀리 부서지는 한,
이웃할 별도 가고, 소리없이 가고,
어둠이 황하(黃河)처럼 범람할지라도 좋다.
얼룩진 역사에 만가(輓歌)를 보내고 참한 노래와 새벽을 잉태한 함성으로
다시 억만 별을 불러 사탄의 가슴에 창을 겨누리라.
새벽종이 울 때까지 창을 겨누리라.

'전아사' 전문

이 땅의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을 향해 양심을 팔아 부끄러운 붓을 휘달릴 때, 석정은 변산의 한 모퉁이를 부여잡고 끝내 이 땅의 자존을 지켰던 것이다. 그의 나이 40세에 간행된 <슬픈 목가(牧歌)>(1947)는 이 시기의 그의 시작 활동을 정리한 것이다.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날 지구(地球)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 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 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 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더뇨.

'슬픈 구도' 전문  (1939 <조광>지 발표)

해방후 석정은 1946년 김제 죽산중학교와 부안중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1951년 전주에 있던 '태백신문'에서 편집고문으로 일하는 것을 시작으로 부안의 청구원 시절을 마감하고 전주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후 석정은 전주상업고등학교, 전주고등학교, 전북대학교에서 강단에 서며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더욱 원숙한 경지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빙하(氷河)>1956, <산의 서곡(序曲)>1967, <대바람 소리>1974 등의 시집을 내었다.

석정은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농부의 생활에서 떨어져 전쟁이 휩쓸고 간 척박한 도시에서 시심을 가꾸는 변화를 맞았지만 고향 부안에 대한 애착은 지극한 것이었다. 전주의 비사벌초사(比斯伐艸舍:전주 남노송동에 있는 석정의 집. 이 역시 석정 자신이 이름을 지었다.)에서도 석정은 청구원 마당가의 시누대를 옮겨다 심고 그곳에서 키우던 나무와 꽃들을 키우기도 하였다.

"학교갔다 오는 길에 보면 아버진 늘 저 마당의 대나무를 어루만지며 하늘 먼 곳을 올려다 보곤 하셨지요. 그렇게 항상 어딘가를 꿈꾸며 사시는 것 같았어요."

석정이 심고 가꾸다 간 나무들이 아직도 자라고 있는 비사벌초사를 지키는 맏딸 일림(一林)씨의 회상이다. 그의 이러한 생활에 녹아든 시상은 시어 하나하나가 그의 분신임을 보여준다.


한 이파리
또 한 이파리
시나브로 지는
지치도록 흰 복사꽃을

꽃잎마다
곱다랗게 자꾸만
감기는 서러운 서러운 연륜(年輪)을
늙으신 아버지의 기침 소리랑
곤때 가신지 오랜 아내랑
어리디 어린 손주랑 사는 곳

버리고 온 생활이여
나의 벅차던 청춘이
아직도 되살아 있는
고향인 성만 싶어 밤을 새운다.

'망향의 노래' 전문(1956 시집 <빙하>에 실림)

1973년 12월 전북문화상 심사를 하는 자리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진 그는 이듬해 투병 끝에 한평생 지켜오던 향토를 두고 생을 마감하였다. 시인 이동주(李東柱)는 조사에서 '남쪽 하늘이 텅 비었구나'하고 슬퍼했다. 그는 창밖에 이는 대바람 소리를 들으며 이미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다음 그의 마지막 시집에 실린 시에 언뜻 스치는 게 있다.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簫簫)한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은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다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승거릴지언정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대바람 소리' 전문 (1974 시집 <대바람 소리>에 실림)

석정이 간 지 4년 후인 1978년에 전주 덕진 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으며, 1991년 8월에는 그의 고향인 부안군 변산면 해창에 '석정공원'이 세워졌다. 한편 정부에서는 1997년도에 그의 시의 산실이었던 청구원(지방기념물 84호, 86년 9월 9일 지정)을 매입하여 복원 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 한다.


글쓴이 :   허정균  
작성일 : 2003년 02월 01일 17시 58분 46초    조회 :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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