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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조국을 위한 인고의 삶 '신인영 선생님'

사진1/신인영 선생. 2000.봄 채석강에서

사진2/ 2000.봄. 부안을 찾은 부안출신 비전향장기수들.
왼쪽부터 신인영, 임방규, 손성모, 허영철 선생

사진3 왼쪽/북송을 하루 앞둔 지난 2000년 9월1일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식당에서 어머니와 남쪽에서
마지막 점심식사를 한 신인영(당시 71살· 올해 1월 사망)선생이
어머니 고봉희 여사의 뺨에 자신의 뺨을 부비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곽윤섭 기자

사진3 오른쪽/평양에서 가족과 상봉한 신인영 선생
(사진 왼쪽부터 며느리, 부인, 신인영씨, 아들)/
ⓒ 임종진(오마이뉴스)




통일조국을 위한 인고의 삶 '신인영 선생님'


2000년 봄, 비전향장기수들이 대거 부안을 찾았다.
비전향장기수 중에는 유독 부안사람들이 많은데,
도대체 부안이 어떤 땅이기에 그런지 보고 싶어서 왔다는 것이다.
글 올리는 이사람이 알기에도 부안에는
허영철 선생님과 신인영 선생님이 계시다.
허영철 선생님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한 글 올리기로 하고,
여기서는 신인영 선생님에 관한 글을
언론 보도를 통해 더듬어 보고자 한다.

1929년 12월 6일 부안 선은리에서 태어난 신인영 선생님은
서울대 상과대에 다니다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월북한 뒤,
1967년 남파됐다가 그 해 체포돼 광주·대전교도소 등에서
98년 3월까지 복역했다.
자유의 몸이 된 후,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에서의 생활도 잠깐,
2000년 9월 다른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아내와 자식이 있는 북한으로 보내졌다.
2002년 1월 7일 ‘오랜 감옥살이의 후과로 앓아오던 불치의 병(골수암)으로
72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고 북한 방송은 보도했다.

신인영 선생님의 어머니(고봉희 여사)는
17년은 북에 간 아들을 기다렸고,
이후 31년은 감옥 문 밖에서 아들이 나올 날만 기다리고 기다렸다.
48년의 기다림 끝에 칠순이 다 된 아들을 끌어안을 수 있었으나,
모자의 만남은 2년으로 끝났다.
2002. 11.8. 95세의 일기로 돌아가셔
전북 부안군 행안면 고인의 선영에 묻혔다.


[2000.09.02. 조선일보]------------------------------------------------

석방 2년만에 또다시 헤어지다니

“아들아, 우리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구나.
제발 몸 건강해야 한다.
칠순이 넘은 비전향장기수 아들 신인영(71)씨를 북으로 보내기 하루 전인 1일, 노모 고봉희(93)씨는 아침부터 계속 눈시울만 닦았다.
전날 아들과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낸 고씨는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을 잘 수가 없어 아들 손을 잡은 채 새벽까지 뜬 눈으로 새웠다”며 연방 눈물이 흐르는 눈가를 훔쳤다.
67년 남파간첩으로 체포된 아들을 위해 31년간 옥바라지를 한 고씨는 출소한 지 2년여 만에 다시 헤어지는 아들에게 “골수암을 앓고 있는 너를 떠나보내기가 너무 힘들다”면서도 “그쪽(북한)에 있는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돼라”고 당부했다.
신씨는 50년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월북, 북에 1남2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01.10. 한겨레 기사]-----------------------------------------------

보고 싶은 어머님!

지금 창밖에서는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과 남쪽에 두고 온 모든 잊지 못하는 친지들에 대한 저의 그리운 정을 담아 싣고 송이송이 하염없이 내리는 듯합니다.
어머님, 그동안 편안하셨어요. 보고 싶었지요. 저도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꿈에도 바라던 저희들의 송환이 실현되어 사랑하는 어머님의 슬하를 떠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넉달이 되어옵니다.
그간 매일같이 어머님이 그리웠고 정다운 얼굴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뒤 어머님이 손수 또박또박 성심 다해서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제2차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으로 남쪽에 갔다 온 적십자 일꾼을 통해 선물전달 소식과 누이동생의 편지, 그리고, 어머님의 모습을 담은 여러장의 사진까지 받았습니다.
사진을 보니 어머님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어머님도 이 아들의 소식이 매일같이 궁금하신 줄 압니다.
어머님, 저는 지금 아름다운 평양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80여평짜리 덩실한 제집 서재에서 어머님을 그리며 이 편지를 씁니다. 생각나세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짓는다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미장을 한다, 어쩌니 하며 역사질을 하던 일이 말이에요. 하기야 제집은 고사하고 0.75평 옥방에서 32년간이나 떨던 제가 아닙니까. 크게 해놓은 일도 없고 그저 신념 하나만을 꿋꿋이 지켜 온 저희들을 이렇게까지 환대해 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꿈만 같습니다. 더구나 제가 남에서 앓아온 골수암이 여기 와서 완치되어 가고 있으니 그 고마움을 어찌 말이나 글로 다 옮길 수 있겠습니까.
나라의 따뜻한 보살피심과 정성스런 치료로 정말이지 제가 북에 와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지나온 한생에 비길 수 없는 가장 복되고 영광 넘친 나날들입니다. 자식들도 름름하게 자라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제 제 인생이 새로 시작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어머님, 이제는 그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어머님과 함께 살고 싶은 그 소원만이 남았습니다. 이 자식에 대해 근심하지 마세요.
그렇게도 저와 함께 이곳으로 오시기를 바라시던 어머님, 지금도 눈을 감기 전에 북녘의 자손들을 보고 싶은 것이 마지막 소원이신 어머님의 그 념원은 어머님 생전에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머님과 함께 오지 못한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데려오기 위하여 다같이 노력한다면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 아들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새 아침을 안아 올 그날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 겨레, 우리 가정에 시련만을 가져다 준 피눈물나는 20세기는 저물어 갑니다.
희망찬 래일, 다시 만날 그날까지 어머님이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계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21세기의 뜻깊은 첫해를 눈앞에 보면서 이 아들이 사랑하는 어머님께 드리는 설인사를 부디 받아주십시오. 어머님께 이 아들은 무릎 꿇고 새해의 큰절을 올립니다.

2000년 12월 25일
평양에서 당신의 아들 인영 올림

[2002.01.11. 오마이뉴스]-----------------------------------

북송 비전향장기수 신인영 씨 사망


2000년 9월2일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신인영 씨가 7일 지병이 악화돼 사망했다고 북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10일 보도했다.

이들 방송은 `신인영 동지의 서거에 대한 부고'에서 '불굴의 통일애국투사이며 신념과 의지의 강자인 비전향장기수 신인영 동지는 남조선에서 겪은 오랜 감옥살이의 후과로 앓아오던 불치의 병으로 주체 91 2002년 1월 7일 72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고 전했다.

신 씨는 1929년 12월 6일 전라북도 부안군 선은리의 극빈 소작농 가정에서 출생해 일제하에서 온갖 민족적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굶주림과 피눈물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광복후에는 남한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당했다고 방송들은 신씨의 약력을 소개했다.

방송들은 이어 신 씨가 '조국해방전쟁(6.25)시기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하여 미제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웠고 전후 체포된 후 32년 동안 모진 옥중고초를 겪고 사상전향을 강요당했으나 조선로동당원으로서의 지조를 꿋꿋이 지켜 싸웠다'고 주장했다.

방송은 신 씨의 일생에 대해 '사람이 한 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보여준 불굴의 인간 참된 조선로동당원의 빛나는 한 생이었다'고 평가하고 '신인영 동지의 서거는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우리인민의 투쟁에서 손실로 된다'고 전했다.

신 씨는 2000년 9월 북송 당시 골수암으로 투병중이었으며 어머니 고봉희(95)씨신 씨 북송 당시 함께 가기를 소망했으나 불허됐다.  

2002/01/11 오전 9:29:20
ⓒ 2002 OhmyNews

[2002.11.10. 한겨레신문]올 1월 숨진 북송 장기수 신인영씨 노모 사망------


“휴전선 없는 저 세상에서 어머니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들을 꼭 만나실 겁니다.”

지난 2000년 북송됐다 올 1월 숨진 장기수 신인영씨의 어머니 고봉희(95)씨가 지난 8일 숨져 전북 부안군 행안면 고인의 선영에서 10일 오전 추도식이 열렸다. 32년 동안 감옥에 갇힌 아들을 기다렸던 고인은 반평생을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새우다 잠시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휴전선으로 갈라져 다시 아들과 헤어진 상태에서 아들이 숨진 소식도 모른 채 눈을 감은 것이다.

신씨는 서울대 상과대에 다니다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월북한 뒤, 1967년 남파됐다가 그 해 체포돼 광주·대전교도소 등에서 98년 3월까지 복역했다. 어머니 고씨는 17년은 북에 간 아들을 기다렸고, 이후 31년은 감옥 문 밖에서 아들이 나올 날만 기다리고 기다렸다. 48년의 기다림 끝에 칠순이 다 된 아들을 끌어안을 수 있었으나, 모자의 만남은 2년으로 끝났다. 정부의 비전향 장기수 북송 방침에 의해 골수암으로 투병중이던 신씨는 2000년 9월 다른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아내와 자식이 있는 북한으로 보내졌다. 신씨는 어머니를 남겨두고 북으로 떠나던 날 통곡했다. 어머니는 당시 아들과 함께 살고 싶다며, 함께 북한에 가기를 간절히 원했으나 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아 늙은 아들과 50년 만에 또한번 ‘생이별’을 해야 했다.

아들을 보낸 뒤, 어머니는 지난 세월 아들이 감옥에서 보낸 수백통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지내왔다. 지난해 8·15 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남쪽 대표들이 비디오 카메라로 신인영씨의 모습을 찍어와 어머니의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러나 올 1월 아들 신인영씨는 결국 북한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쪽에 있는 혜영(76) 선영(65) 예영(62)씨 형제는 이를 어머니에게 차마 알리지 못했다. 병든 노모를 지켜왔던 딸 선영씨는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도 어머니는 ‘우리 큰아들이 제일 보고싶다’고 말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전국에서 고인의 추도식장을 찾은 신씨의 동료 장기수들과 후원자들은 “남북교류는 더딘데 분단의 한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나고 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글쓴이 :   허철희  
작성일 : 2003년 02월 13일 02시 04분 05초    조회 :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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