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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암의 자명금自鳴琴
취성제, 부안김씨 제실로 석동산에 있다.ⓒ부안21


김구와 '스스로 울리는' 거문고 이야기

부안 읍네에서 남쪽으로 1.5.km쯤의 거리에 석동산이 있다. 부안김씨들의 선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아담한 산으로 이 산의 남쪽 기슭 취성제聚星齊 옆에 지금은 불타 없어진 덕성암德星庵이라는 부안김씨들의 제실이 있었는데, 이 제실에는 거문고 한 틀이 있어 자손들이 많이 모이면 이 거문고가 제 스스로 ‘스르렁 둥’하고 운다는 것이다.

이 거문고는 부안김씨들의 중시조로 고려 고종高宗 때의 명신名臣이자 문장가인 지포止浦 김구金坵가 애용하였던 거문고로 실전失傳하였다. 지포의 후손인 수성壽星이라는 분이 1703년에 서울의 금성 박판서 태환錦城 朴判書 泰桓의 집에서 우연히 거문고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그 뒷 면을 보니 자기 선조인 김구의 자字와 휘諱가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놀랍고 반가워 주인에게 선조의 소중한 유물임을 말하고 찾아 와 덕성암에 보관하였는데, 이 거문고가 덕성암으로 온 후에는 가끔 스스로 ‘스르렁 둥’하고 소리를 내어 울므로 자손들이 자명금(自鳴琴)이라 하여 보물처럼 애지중지하였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어느 거문고 만드는 공쟁이가 하루는 찾아와 이 자명금을 보고 그 정교함과 오묘한 음률에 마음이 어두워 밤에 몰래 훔쳐 달아났다. 자명금이 없어진 것을 안 자손들이 뒤쫓아 찾아왔으나 줄받침이 부서지고 줄도 모두 망가져 수성壽星의 손자 동호東灝가 수리하기 위하여 고산에 사는 거문고 잘 고치는 유씨에게 수리를 부탁하고 있던 중 1712년 덕성암에 큰 불이 나 자명금도 함께 불타버렸다.

덕성암이 불탄 그 자리에 취성제를 크게 지었으나, 부안김씨들의 조상을 기리는 琴줄과 아름다운 음률의 가락은 소멸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소재지: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제보자:김인술(金仁述, 남, 62세, 부안군 부안읍 모산리)/1990년 당시)/출처:전설지(1990.08.20. 전라북도 발행)/김형주의 '부안이야기'를 참조하여 덕성암이 불탄 연대를 1732년에서 1712년으로 고쳤음을 밝힘


김구(金坵: 1211~1278)는 부안김씨들의 현조(顯祖)며 <영은사(靈隱寺)> 시를 남긴 우복야(右僕射) 김의(金宜)의 아들이다. 자는 차산(次山), 처음 이름은 백일(百鎰)이고, 호는 지포(止浦)며 그의 말년에 부안읍 선학동(仙鶴洞: 지금의 부안읍 仙隱洞)에서 살았으므로 지금도 마을 안에는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지은 유허비(遺墟碑)와 비각이 있다.  

그는 부안이 낳은 인물로는 역사상 최고의 인물이다. 큰 문장가(文章家)요 정략가이기도 하다. 그는 몽골(蒙古)이 침략하여 강점한 시기에 국난극복을 그의 탁월한 지략과 화려한 병려문체(騈儷文體: 변려문)의 표문(表文)으로 막아냈으니 원(元)나라의 국왕은 그의 표문을 받아볼 때마다 사리에 맞는 주장과 곡진(曲盡)한 그의 글 솜씨에 매양 감탄하며 막대한 공물(貢物) 등의 요구를 철회하거나 탕감하여 주었으며, 몽고군에게는 약탈행위를 자제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원의 한림학사(翰林學士)인 왕악(王鶚)은 김구(金坵)가 지은 표사(表詞)의 글을 볼 때마다 감탄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번 만나보기를 소원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高麗史)》의 열전(列傳)과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사략(東國史略),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그는 큰 문장가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시문집(詩文集) 《용루집(龍樓集)》과 기행문집인 《북정록(北征錄)》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그의 문집 《지포집(止浦集)》 2책 3권은 정조(正祖)때 그의 18대손 김동호(金東灝)가 《동문선(東文選)》과 《고려사》 등에 수록되어 있는 96편의 글을 찾아내어 1801년(純祖 1)에 간행한 것이다. 그 후 이 문집은 1973년에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의 대동문화연구소(大東文化硏究所)에서 《고려명현집(高麗名賢集)》을 발간할 대 《서하집(西河集)》 등 일곱 명현들의 문집과 함께 영인하여 발간한 바 있고, 1984년에 역시 성균관대학교에서 번역하여 《국역지포선생문집(國譯止浦先生文集)》으로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소문났다. 나이 열두 살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였으며, 스물 두 살 때인 1232년(高宗 19)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는데 같은 동향인(同鄕人) 황각보(黃閣宝)가 시기 모함하여 제주(濟州)의 판관(判官)으로 좌천되기도 하였으나 곧 왕의 옆에서 문사장(文詞章)을 담당하는 합문지후(閤門祗侯)와 국학직강(國學直講), 한림원의 지제고(知制誥) 등 주로 문한(文翰)의 일을 맡은 벼슬을 두루 거치고, 신종(神宗), 희종(熙宗), 강종(康宗) 삼조(三朝)의 실록(實錄)을 수찬하고 대사성(大司成), 좌우복야(左右僕射), 이부상서(吏部尙書), 평장사(平章事)와 지공거(知貢擧: 人材를 뽑는 시험관)을 맡기도 하면서 첨의부찬성사(僉議府贊成事), 참문학사판판도사사(叅文學事判版圖司事)와 세자이사(世子貳師)를 지냈다. 그가 문과에 2등으로 급제(及弟) 하였을 때 당시 지공거(知貢擧)였던 문숙공(文肅公) 김양경(金良鏡)은 그에게 1등 주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의발(衣鉢)을 전수하며 위로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김구(金坵)는 장문의 <상좌주김상국전의발계(上座主金相國傳衣鉢啓)>를 올려 감사함을 표한 글은 널리 알려진 명문이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文章家) 이규보(李奎報)는 이 글을 보고 말하기를 “앞으로 나를 이어 나라의 문형(文衡)을 잡을 사람은 최자(崔滋)와 김급제(金及弟: 金坵를 말함)뿐이다”고 말하였다.(출처/김형주의 ‘부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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